Skip to content
2018.09.07 01:44

가을밤

(*.221.42.100) 조회 수 14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YGnockT.jpg

 

가을밤

 

생각하면 나는 화려한 것의 반대켠에서 고요하고 적막한 것에

길들여져 왔다

쑥갓꽃 패랭이꽃 손톱꽃 앉은뱅이꽃, 작아서 아름다운 것들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점점 깊어가는 가을밤의 나뭇잎 지는 소리

밤나무 뿌리를 적시며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나는 사랑한다

세상이 가장 조그마해지고 따뜻해지는 가을밤을,

불켜지 않아도 마음이 화안한 가을밤을 나는 사랑한다

 

이미 단풍나무 끝에 가볍고 파아란 집을 매달고 겨울잠에 들어간

가을 벌레를 나는 사랑한다

그 집은 생각만 해도 얼마나 따뜻한가

 

수염을 곧추세우고 햇빛을 즐기며 풀숲을 누비던

여치와 버마제비들

섬돌의 이른 잠을 깨우며 서릿밤을 울던

귀뚜라미를 나는 사랑한다

 

그 땐 머리 위에 일찍 뜬 별이 돋고 먼 산 오리나무 숲속에선

비둘기가 구구구 울었다

이미 마굿간에 든 소와 마당귀에 서 있는 염소를 또 나는 사랑한다

나락을 실어 나르느라 발톱이 찢겨진 소, 거친 풀, 센 여물에도

좋아라 다가서던

 

어둠 속에서 툭툭 땅을 차고 일어서서 센 혓바닥으로

송아지를 핥을 때마다 혀의 힘에 못 이겨 비틀거리던

송아지를 나는 사랑한다

나는 일하는 소를, 일하다가 발톱이 찢겨진 소를 사랑한다

 

나는 가을밤 으스름의 목화밭을 사랑한다

목화밭에 가서, 참다참다 끝내 참을 수 없어 터뜨린

울음 같은 목화송이를 바라보며

저것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것임을 생각하고, 저것이

세상에서 제일 보드랍고 이쁜 것임을 생각하고

 

토끼보다 더 사랑스러운 그 야들야들한 목화송이를 만지며

만지며

내가 까아만 어둠 속으로 잠기어 가던 가을 저녁을 사랑한다

 

나는 나뭇잎 지는 가을밤을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때로 슬픔이 묻어 있지만

슬픔은 나를 추억의 정거장으로 데리고 가는 힘이 있다


왕꽃님의 詩 월드

왕꽃님의 詩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왕꽃님787'님이 이 게시판에 남겨주신 주옥같은 詩들은 ... 포토진 2018.04.17 4307
공지 광고나 PR은 동네방네 게시판에 등록해 주세요. 포토진 2008.07.09 10299
공지 사진에 관한 질문이 있으면 궁금한 내용을 부담없이 적어 주세요. 포토진 2008.05.24 9432
1106 폭풍속의 풍경 왕꽃님787 2019.02.07 257
1105 산사의 마당에 왕꽃님787 2019.03.19 257
1104 추워 떠는 사람들의 왕꽃님787 2018.11.25 257
1103 내부를 정리하고 왕꽃님787 2019.01.17 257
1102 겨울 모과나무 왕꽃님787 2019.03.04 256
1101 나의 희망이라는 이름의 해독제 왕꽃님787 2018.04.19 256
1100 욕망들은 쨍하는 햇살 왕꽃님787 2019.01.29 256
1099 노래 하리이다 왕꽃님787 2019.02.15 256
1098 배 한 척 없는 왕꽃님787 2019.01.11 256
1097 잎자루가 길어서 더 예쁜 왕꽃님787 2018.08.25 255
1096 나에 관한 스케치 왕꽃님787 2018.04.27 255
1095 이별이 옵니다 왕꽃님787 2019.03.15 255
1094 내 한낮에 쓰는 편지 왕꽃님787 2018.02.02 255
1093 진정한 강함 왕꽃님787 2019.03.01 254
1092 세상 등지고 잠든 왕꽃님787 2019.02.01 254
1091 아득한 정 왕꽃님787 2019.01.21 254
1090 절박한 물음 왕꽃님787 2019.03.06 253
1089 말 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왕꽃님787 2018.12.26 253
1088 흔들리는 코스모스 왕꽃님787 2019.01.11 253
1087 포장마차에 가면 왕꽃님787 2018.02.14 253
1086 우리 자유 왕꽃님787 2018.04.12 252
1085 웃자 왕꽃님787 2019.03.13 252
1084 가슴에 오래 머무는 꽃 왕꽃님787 2019.01.14 252
1083 손 끝은 하늘 왕꽃님787 2019.02.07 251
1082 무익한 사념도 왕꽃님787 2019.01.04 25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9 Next
/ 49

Copyright © Aesthetics Of The Moment. Since 2002.

Powered by 나의 / E-mail : photogene@naver.com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