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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흉악범 얼굴사진 보도 신중해야

김상철|한국일보   사회부 차장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한국일보 대검찰청·  서울지검 출입, 법조팀장
■ 영국 브리스톨대 연수  (공공정책 석사과정 졸업)

‘모를 권리’

“차라리 얼굴을 보지 않는 게 좋았을 것 같아요. 그렇게 멀쩡하게 생긴 놈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혼란스럽더라고요.”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사진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공개된 다음날 가까운 여성 지인이 한 말이다. 의외였다. 당연히 얼굴공개를 반길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7명(나중에 여죄가 드러났지만)이나 무참히 죽인 흉악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말끔하게 생겨서 이제 평범한 주위사람도 다시 보게 되더라”면서 “도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흉악범 하면 으레 거칠고 우악스럽게 생긴 외모를 떠올리게 되는데, 막상 평균 이상의 미남형 얼굴을 대하는 순간 고정관념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알권리’도 있지만 ‘모를 권리’도 있는 것 아닌가. 언론이 그렇게 경쟁적으로 흉악범의 얼굴을 내보내면 보고 싶지 않아도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모를 권리’라! 권리이론에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그럴듯한 말이다. 요즘같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환경에서 독자나 시청자들이 이런 하소연을 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순의 얼굴공개를 계기로 불이 붙은 ‘알권리(언론자유) vs. 피의자 인권(인격권)’ 논란에서 이 같은 견해는 어쩌면 소수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흉악범 얼굴 공개 논란이 그것을 밀어붙인 쪽에서 주장하듯이 그렇게 단순명료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얼굴공개를 결정하기 전에 돌아봐야 할 가치들이 많다는 뜻이다.
기자 입장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줄 ‘언론의 자유’보다 소중한 가치가 또 있을까.  하지만 언론자유는 언론에 대한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꽃필 수 있다고 전제할 때, 자칫 절제되지 않은 자유가 신뢰의 상실을 초래해 오히려 언론자유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할지, 말지는 원칙적으로 언론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현실에 비추어보면 비록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피의자 얼굴사진 공개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쟁점별로 살펴보자.
우선 언론이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법적 책임 논란이 있다. 언론의 자유도 다른 법익과 충돌할 때는 최종적으로 사법적 판단에 의해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 부분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범의 얼굴공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법원의 직접적인 판례가 없다. 다만 법원은 대체로 2가지 법익이 충돌할 때 양쪽의 가치를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보호할 가치가 큰지를 따져 판단해왔다. 강호순 사건의 경우 언론의 자유(알권리)와 개인의 인격권(명예와 초상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보호할 가치가 크냐가 쟁점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 대법원의 다음 판례를 참고할 만하다.

“(언론의 보도가) 공공적,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하며, 피해자가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의 여부도 고려해야 한다.”
(대판 2002.1.22. 2000다37524, 37531)

이 판례에 비추어 보면, 결국 강호순의 얼굴이 ‘공공적, 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인지가 판단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법률가들의 견해가 엇갈리지만, 대체로 강호순 같은 흉악범의 얼굴 보도는 법원이 용인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했다고 해서 당사자나 그 가족이 법적으로 문제 삼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언론이 법적 책임을 추궁당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곧 아무거나 보도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법적인 문제가 전부라면 언론윤리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법적 책임을 떠나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성찰, 즉 언론의 흉악범 얼굴 공개가 가져올 사회적 이익과 불이익, 윤리적 책임의 문제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피의자 가족의 고통은?

우선 논란이 되는 부분은, 흉악범의 얼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될 경우 그 가족이 입게 될 피해다. 특히 피의자의 어린 자녀들이 성장과정에서 입게 될 정신적 충격과 고통은 피의자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얼굴공개를 주장하는 이들은 가족은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연좌죄가 폐지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문화적, 사회적 연좌죄’가 남아 있는 우리 사회 현실에서 가족의 피해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이름과 주소 등 자세한 신상이 공개된 마당에 흉악범의 얼굴을 추가로 공개한다고 해서 얻게 될 공익이 과연 어떤 것인지도 의문이다. 얼굴공개를 주장하는 이들은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잠재적’ 흉악범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고, 흉악범의 여죄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일반적 범죄 용의자들의 사진이 실린 수배전단이 나붙는 것과 비교할 때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흉악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를 찾기 어렵다.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대개 피해자는 이미 다 사망한 상태이고, 강호순 사건에서 보았듯이 그를 아는 사람은 한결같이 그가 흉악범죄를 저질렀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얼굴공개로 추가범죄 정보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강호순의 여죄도 휴대폰 통화내역 조회와 유전자 감식, 본인의 자백에 의한 것이었지, 얼굴공개가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수배자 사진 공개는 별개의 문제다. 수배자는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범행을 막고 범인을 조속히 검거하기 위해 법원의 영장에 근거해 얼굴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사안의 성격이 다르다. 형평성을 논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반면 흉악범 얼굴 공개로 인한 역효과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언급한 가족들의 피해 외에도 얼굴공개가 범인에 대한 또 다른 사회적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엽기적 살인마 테드 번디 사례가 대표적이다. 무려 여성 35명을 살해한 그는 경찰에 체포된 뒤 잘생긴 외모와 시카고대 법대 출신이라는 학벌, 뛰어난 언변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살인 귀공자’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팬레터가 쏟아졌고, 그의 범죄를 부인하는 주장까지 나왔다.
우리나라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1987년 대한항공 858여객기 폭파범 김현희가 체포돼 김포공항을 통해 압송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와 여객기 폭파범의 이미지 사이에서 인지 부조화를 느꼈다. 115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인 테러범이라기엔 너무 가녀린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불과 보름 만에 그녀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을 때도 이상하게 별다른 반대여론이 조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미모가 술자리 안줏거리가 된 기억이 있다. 여객기 폭파범이 우악스럽게 생긴 남성이었더라도 그랬을까.
두 사건은 흉악범의 얼굴 공개가 범행의 객관적 사실과 상관없이 범죄자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낳고, 이 같은 여론의 평판은 법 집행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들의 ‘면피’ 행태도 문제

다른 무엇보다 우리 언론의 경쟁적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번에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한 신문과 방송이 얼마나 진지한 고민과 성찰 끝에 보도를 결정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맨 처음 얼굴을 공개한 ‘조선일보’는 그동안 몇 차례 흉악범의 얼굴 공개를 주장해온 사실을 감안할 때 일관된 입장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이어 경쟁적으로 얼굴을 공개하고 나선 많은 신문과 방송의 경우, 별다른 고민 없이 우리 언론계에 관행처럼 굳어진 ‘대세 추종’과 ‘면피’ 행태를 되풀이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한번 터진 물꼬를 다시 막기는 어렵다. 앞으로 유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보다 자극적인 사진을 싣기 위해 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 책임이야 당연히 해당언론사가 지겠지만, 그것이 기여할 공익보다 더 큰 폐해를 낳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신정아 누드 사진’ 파문이 특정신문만의 문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출처 : 관훈저널 2009년3월25일(통권 110호)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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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환의 '찰나의 미학 포토진'
photoge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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