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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사진, 연출하지 마라! - 이영준 _ 기계 평론가

아무리 디지털의 시대가 오고 모든 것이 얇고 가벼워져도 사진 기자들이 쓰는 카메라는 아직도 왜 그렇게 무거운지. 오늘도 무거운 카메라를 잔뜩 메고 피사체를 쫓아 전력 질주하는 기자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그들의 노력이 참으로 숭고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사진 기자가 자신들 일이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워서 3D 업종이라고 한 말도 생각이 난다. 일단 글의 서두에서 사진 기자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기자들의 이런 노고를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연출 사진이다. 취재 현장을 가 보자. 지난 5월 15일 남북간에 철도 연결을 기념하는 열차 운행이 있었다. 북측 열차 시발 지점.
북한의 기관차가 역에서 기다리고 있고, 기관사 두 명도 기다리고 있다. 남측 기관사 두 명이 오자 사진 기자들의 요란한 주문이 시작된다. 이렇게 서라, 저렇게 서라, 악수를 해라, 한 번 더 해라… 계속되는 주문에 양측 기관사들은 어색하게 악수하고, 같이 서고 한다.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풍경이다. 평소 사진 기자들은 현장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중립적으로 보도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내가 현장에서, 혹은 텔레비전으로 목격한 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진 기자들은 피사체에게 많은 주문을 한다. 이것은 중립적인 것도 아니고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것도 아니다. 중립적이고 사실 그대로의 보도란 피사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것을 말한다.

아마 이것은 너무나 초보적인 상식이라 되풀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기자들은 피사체에게 여러 가지 주문을 한다. 남북 열차 연결 운행 현장의 남북 측 기관사들은 서로 너무나 어색했고, 악수를 할 마음의 준비도 안 돼 있었고, 악수하는 절차도 없었다. 그 장면은 순전히 사진 기자들이 연출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사실의 날조고 왜곡이고 허위 보도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른 변명은 일체 필요 없다.

예상 되는 변명을 나열해 보자. 이렇게 안 하면 그림이 안 되니까. 당신이 피카소냐. 그림 만들고 앉았게. 기왕에 남북 측 기관사들이 만났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면 통일 분위기에 도움도 되고 좋으니까. 당신이 통일부 관리냐. 아니면 남북적십자사 직원이냐.
가장 현실적인 변명은 이런그림 안 만들어 가면 데스크에서 혼나고 경쟁사에 뒤지기 때문이다. 그런거 혼내는 데스크는 기자 곤조로 뒤엎어 버려라. 당신들 평소에 기자 곤조 대단히 내세우지 않냐 말이다. 아니면 데스크를 회사 근처 소줏집으로 모시고 가서 술기운에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얘기하고 욕도 좀 해라. 그리고 기자는 영업국 직원이 아니다. 판매 경쟁 같은 거 신경 쓰지 마라.

이것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해 가면서 허위 사실을 날조하기 위한 더러운 경쟁이다. 바로 지금, 언론사들은 허위 사실을 왜곡, 날조하는 보도 사진의 관례를 뜯어 고쳐라. 사진의 한 끝자락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심히 욕지기난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피사체의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것이다.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그림이 안 되면 그림이 안 되는 대로 말이다. 우리는 사진의 역사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 아더 로드스타인이 말라서 갈라진 땅 위에 죽은 소의 해골을 조금 옮겨 놓고 찍은 사실을 토로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

보도 사진가에게 진실은 무엇인가? 피사체에는 손끝하나 대지 않고 찍는 것이 진실이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보도 사진가의 몸과 눈과 셔터 버튼과 노출 조절 스위치들뿐이다. 기자는 절대로 피사체에 손도 대서는 안 된다. 물론 애매한 경우도 있다. 셔터 찬스를 한 번 더 잡기 위해 잠깐 서 보라고 주문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게 서라, 저렇게서라 하며 특정한 자세나 배치를 주문하는 것은 명백한 날조고 조작이다.

피사체들은 그렇게 설 생각도 없고, 원래 그렇게 어수선하게 서 있는 것이 현장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지만, IMF 때 은행 창구 주위에 달러 지폐 돈다발을 둥글게 쌓아 놓고 찍은 모 언론사 기자의 사진은 한심한 조작일뿐더러, 그디자인이 너무나촌스러워서 나를놀라게 했다. 아마도 가장 애매한 경우는 포토샵으로 사진을 고치는 일일 것이다. 특히, 없는 사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간 톤을 바꿔서 분위기를 강조한다든가 하는 애매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마 이런 경우는 상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과거의 사례를 들어 보자. 내가 아는 어느 기자는 갑자기 낮에 시커먼 구름이 끼고 도심이 컴컴해지면서 소낙비가 내리는 기상 현상을 찍으러 남산에 올라갔다. 그 사이 시커먼 구름은 사라지고 금세 상황은 정상으로 되돌아가서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 기자는 인화하면서 사진 상단을 시커멓게 버닝을 하여 검은 하늘을 만들었다. 이것은 명백한 조작이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날로그 시절도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이런 조작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조작과 진실의 경계는 분명히 있다. 있는 사실인데 잘 안 보여서 콘트라스트를 올리거나 명암을 조절하는 것은 날조가 아니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렌즈 앞에 김이 서린 것을 닦아서 사물이 분명하게 보이게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즉 원래 보이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을 안 보이도록 가리고 있는 장애 요인을 걷어 내는 것은 날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진상의 조절을 심하게 해서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조작이고 날조이다. 모든 기자들은 이 둘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가끔 길거리 스냅 사진이 실리는 경우가 있다. 이때 사진 기자가 행인들에게 나란히 서서 걸으라고 해 놓고 사진을 찍으면 누가 봐도 웃기지 않겠는가? 행인이건 검찰에 소환되는 기업체 회장이건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진 기자의 연출에 맞춰서 행동하기 위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의 진실은, 어수선하게 검찰에 소환되는 기업체 회장과 아수라장으로 뒤엉켜 있는 보도진이다. 그걸 그냥 찍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직접 목격한 가장 욕지기나는 장면은 무슨 운동팀이 외국에 나갈 때 공항에서 단체로 주먹 올리고 파이팅 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목격한 현장은 이렇다. 어느 축구팀은 한국인들과 외국인들, 해외 입양아들이 뒤섞인 매우이질적이고 혼성적인 집단이었다. 그들은 같이 파이팅 할 준비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사진 기자는 사진을 찍으면서“파이팅!”을 외친다. 그러자 30여 명 중 서너 명만 주먹을 올리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아마 외국에서 자라난 입양아들은 파이팅이란 희한한 영어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한 장 더 찍으면서 기자는 또 파이팅을 외친다. 그러자 한십여 명 주먹을 올린다. 이런 식으로 똥개 훈련을 몇 번 시키니까 결국 모든 사람이 일치단결하여 주먹을 올리고 파이팅을 외치는 가상의(virtual,fictional) 파이팅 장면이 연출되었고, 신문에 실린 사진은 맨 마지막에 모두들 주먹을 올린 일사불란한 장면이었다.

당신이 영화감독이냐. 없는 장면 연출시키게. 당신이 대대장님께 신고식 연습시키는 대대 작전 장교냐. 될때까지 같은 동작 반복시키게. 이 장면이 나쁜 이유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했다는 것 외에도, 항상 되풀이되는 패턴을 또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무슨 팀이 외국 나가는구나. 그럼 이런 그림을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그 진부한 패턴 말이다. 일상은 진부하지만 현실은 결코 진부하지 않다.

보도 사진가는 현실의 놀라운 장면들을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주어진 일을 패턴에 따라 반복하면 되는 월급쟁이가 아니다. 그는 절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은행 직원이 아니란 말이다. 보도 사진에는 철마다 되풀이되는 지겨운 패턴이 있다. 봄이 오면 남쪽 지방에 개나리 꽃망울 터진 장면 뒤로 사람이 지나가는 것(반드시 광각이다), 휴가철이면 해운대에 백만 인파가 콩나물시루처럼 모인 것(반드시 망원), 첫 얼음이 얼면 고드름을 가지고 노는 철원의 어린이들(반드시 광각) 등등 보도사진에는 신물 나게 반복되는 패턴들이 있다. 이런 것들 몽땅 없애라. 선배나 데스크 말 듣지 말고 밖에 나가서 새로 관찰하고 새로 발견해라.

카메라의 사명은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새로 발견해서 보여 주는 것이다. 뷰파인더가 무엇인가? 장면을 찾는 장치이다. 선배나 데스크가 해 준 말을 되새기는 장치가 아니란 말이다. 관례라는 변명 대지 마라. 이것은 명백히, 썩어 문드러지게 잘못된 관례고, 지켜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당장 때려 없애야 할 관례다. 변명을 대면 댈수록 당신은 자기 자신이 허위 사실의 날조와 왜곡에 깊이 몸담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 사회에 남녀차별이 없어져야 할 관례고 지금은 벽이 많이 허물어지고 있듯이, 잘못된 보도 사진의 관례는 다 쓰고 난 휴지처럼 아무 미련 없이 내버려야 한다.그러나 모든 사진 기자들이 다 허위를 날조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허위의 날조는 우리가 접하는 보도 사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다. 문제는, 그 극히 일부가 보도 사진 전체의 위상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지에 먹이 한 방울이라도 튀면 더 이상 백지가 아니듯이 말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만날 뻔하게 반복되는 패턴과 연출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이 있고, 그들은 전시로도, 책으로도 그런 잘못된 관행을 고발하고 뜯어고치려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은 언론이라는 거대한 제도 앞에서는 달걀로 바위 치기지만, 그런 게 잘못됐음을 자각하고 남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매우 고귀한 일이다. 아마도 잘못된 보도사진의 관행은 언젠가는 고쳐지리라 믿는다. 사진 기자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허위 사실을 날조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면 당신의 기자 곤조는 그것을 용납하겠는가? 일본말 써서 미안하다.

[2007년 8월 / 99호]
포토넷 column
http://www.mphotonet.com/home/mphotonet/bbs.php?id=article_02&groupid=&where=&keyword=&ikeyword=&sort=&order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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