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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서론
현재 신문, 잡지는 사회, 문화적 배경에 민감한 미디어다.
수많은 정보를 생산, 소비하는 미디어는 대중의 정보수용 태도의 변동으로 변화에 대응하게되었다. 수용자들의 정보추구행위의 변화는 시각화현상을 들 수 있다.
문자를 읽고 이해하며 사고하는 형태에서 그림과 영상을 보고 즐기고 느끼는 감각적인 영상문화로의 전환이다. 그러므로 신문, 잡지 등의 인쇄매체는 사진이 핵심이 되고있어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 일반화되는 사회변동을 가져왔다.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은 사진이 갖는 정확한 사실성 복사 능력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진은 대상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은 방식으로 빼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사진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통념이 널리 퍼져있다. 사진은 여러 가지 분쟁에서 부인 할 수 없는 증거능력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러한 통념에서 비롯되었다.

사진의 여러 분야 중에 포토저널리즘은 사각형의 프레임으로 현실을 반영해야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극적인 단면만을 선택하여 부각시킨다. 그것이 지닌 성격으로 독자들은 감동과 충격을 느끼게되는 것이다. 인간의 의사소통도구로서의 포토저널리즘은 보도에서 내용의 일부가 되며 문자와 함께 보도 매체의 사회적 가치와 동일한 준거로서의 역할을 하게된다. 기능적인 면에서 볼 때 사진은 기사보다도 더 실감나고 강력한 호소력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사진을 통해 어떤 주제가 쉽게 구체화되고 영상으로 전달받기에 무엇보다도 독자가 쉽게 내용을 이해한다. 특히 현장을 증언하는 생생하고 거짓 없는 기록으로 대중에게 더 강한 현실감을 던져준다.

포토저널리즘은 현재의 중요한 사실들을 카메라를 사용하여 기록하고 전달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하고 그곳에서 인간의 상황이 어떠한가에 대한 시각적 진술을 제공하는 것이 임무이다.  따라서 포토저널리즘은 한 장소나 사건, 사고 또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실체를 파헤치기도 하며 진실에 대한 해석과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포토저널리즘 이병훈외, 한국언론연구원 1993.12p220

그러나 과연 사진이라는 매체가 진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사진이 진실 되고 객관적인 증거라는 믿음은 혹시 신화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보통 신화라는 용어는 믿어져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옛날 이야기나 아니면 현실이 될 수 없는 잘못된 믿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롤랑바르트가 말하는 신화는 사실상 신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화라고 깨닫지 못하는 실체로 이 모든 실체는 인간이 관여하는 기호작용을 통해 생산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우연적 산물이 끊임없이 혼동되는 것을 비판하며 그 이데올로기적 남용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전 세계적인 규모의 정보 왜곡 시스템을 이루는 사진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사진의 역할은 역사적으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진기는 아무리 가짜 모습일지라도 거기에 진정성을 부여하게 된다. 사진기는 거짓말을 인용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라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점이 거짓말은 더욱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 이렇게 따온 사진은 그 자체의 틀 안에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거나 속으로 감춘 어떤 주장 안에 하나의 사실로서 놓일 때 그것은 보는 이를 오도할 수 있다.

그런 오도는 홍보에서처럼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지는가 하면, 이데올로기적 믿음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은 원래 거짓말은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진실을 말하지도 못한다. 설사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말하는 진실 그것이 주장하는 진실은 범위가 제한되어있다.
  
Ⅱ. 본론

1.사진의 사실성
1839년 다게레오 타입의 사진이 처음 프랑스에서 발표되었을 당시 사진은 기록의 수단이자, 증거의 원천으로 각광받게 된다. 사진은 인간의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객관적 매체로 인식되었다. 사진은 진실성과 객관성의 표본으로 여겨졌으며 사진의 정확성, 실재에 대한 충실도는 신뢰 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담보되었다.

사진은 대상을 눈으로 보는 것과 동일하게 재현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사진은 대체로 이러한 재련성에 기반을 두어 대상을 복제해 내는 것은 기본 목표로 삼았다.
사진에 대한 사실주의적 이해는 지금 현재까지도 보편적인 것이라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잔손탁은 “사진은 증거가 된다. 말을 듣고도 의심하는 사람에게 그에 관한 사진을 보여주면 그 실제가 증명된다……. 한 장의 사진은 발생한 어떤 사건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물이 된다” 사진이야기. 유경선역 (1986)서울:해뜸 p16)라고 하면서 사진의 리얼리즘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사진이 우리들의 정서에 어필하는 것은 바로 신빙성의 힘이다. 응시자는 사진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그 장소에 있었다면 그 광경이나 대상을 정확히 그대로 보았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사진의 발명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사진가의 창조물보다는 기계의 생산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의 생산과정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의 역할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기계적인 과정이 사진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사진은 우리에게 그것이 보여주는 것의 존재를 의심의 여지없이 보증하는 필요하고 충분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믿음에 기반해서 사진은 역사와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둘 다 과거를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면서 둘 다 실증주의적인 지식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기자를 ‘역사의 witness'라고 부르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진이 역사의 자료로서 받아 들여 지는 것은, ‘한때 여기 있었다’를 보여주는 객관적 진실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된 관습의 묵계이다.
한정식 교수는 사진은 현실을 그 대상으로 한다. 사진의 변모, 한정식. 눈빛 1996 P81
현실에 있는 것은 찍히지만, 없는 것은 찍히지 않는다. 따라서 사진에 찍힌 것은 있거나 적어도 있었던 것이다. 없었다면 찍혔을 리가 없다라는 소박한 생각이 사진은 거짓말은 않는다는 거짓말을 정말처럼 믿게 해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사진은 있었거나 있는 것이라는데 서 진실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사진기 그대로 ‘진실’일 수는 없다. 사실과 진실은 서로 다르며 사실이 모두 진실일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사진기 뒤에 사진가가 있어서 그의 관점에 따라 피사체가 선택되고 촬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진의 위험성은 사진이 진실이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 진실성을 보장받는다. 사진은 대대적인 속임수와 왜곡에 이용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이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진매체는 그 기계적 특성상 현실의 전체를 객관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고정된 현실의 한 장면만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므로 사진의 사실성이란 현실로부터 고립되어 선택된 특정장면이 기계적으로 재현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진실이냐 거짓이냐 하는 문제는 사진 자체와는 관계가 없고 사진 밖의 요소들 즉 사진기자의 촬영의도와 편집자의 사용의도와 관계되는 문제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진이미지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그 자체의 분명한 목적에 의해 메시지를 형성하고 전달한다는 의미이다. 유재천 교수는 “문자에 대한 표현력에 비해 사진적인 재현이 갖는‘객관성’이나 ‘사실성’ ‘기록성’은 사진의 핵심이 되는 속성이다. 보도사진과 사진기자의기능(사진기자회보)12호 한국사진기자회1986.P32

사진은 추상적이고 감각적으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대상을 표현하게 되므로 현실재현 수단으로써 어떤 매체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진이 사실의 단순한 재현만이 아니라 사실을 구성하는 재료로 쓰여질 경우 사진기자의 주관이나 카메라 렌즈의 선택, 취재각도등 프레이밍에 따라 사진의 내용을 임의로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전 세계적인 규모의 정보 왜곡 시스템을 이루는 사진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사진의 역할은 역사적으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진기는 아무리 가짜 모습일지라도 거기에 진정성을 부여하게 된다. 사진기는 거짓말을 인용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라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점이 거짓말은 더욱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 이렇게 따온 사진은 그 자체의 틀 안에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거나 속으로 감춘 어떤 주장 안에 하나의 사실로서 놓일 때 그것은 보는 이를 오도할 수 있다.

그런 오도는 홍보에서처럼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지는가 하면, 이데올로기적 믿음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은 원래 거짓말은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진실을 말하지도 못한다. 설사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말하는 진실 그것이 주장하는 진실은 범위가 제한되어있다.
사진은 진실하지 않다. 사진기자는 특수한 정치상황 하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진의 진상에 대한 일반 여론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실례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예를 들면 9.11테러사건, 이라크 전에 후세인동상의 철거... 그러나 다른 이들이 겪는 것을 사진기로 들여다보면서 내가 보는 것이 ‘철저한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진실의 아주 상이한 여러 차원들을 뒤섞어 놓은 위험성이 있다. 사진은 의학․물리학․기상학․천문학․생물학 등에서 연구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정보는 또 신상에 관한 서류․여권․군사정보 등 사회적 정치적 통제체계 속으로 들어간다. 또한 사진은 대중을 상대로 표현 수단으로서 매스미디어에 사용된다. 이 세 가지 맥락은 제각각 다르다.

그런데도 사진에 담긴 진실성은 모두 같다고 사람들은 흔히 믿어왔다. 한 장의 사진이 과학적인 용도로 쓰일 때 사진에 나타낼 뚜렷한 증거는 결론으로 이끄는데 도움을 준다.
사진은 어떤 연구의 개념들 속에서 정보를 제공한다. 사진이 통제체계에서 쓰일 때 사진에 나타난 증거는 신분을 확인하고 증명하는데 국한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사진이 표현수단으로 쓰이는 순간부터 그것을 살아있는 체험의 본질과 관련을 맺게되며 따라서 진실은 한결 복잡해진다. 부상당한 다리의 X선 사진은 뼈가 부러졌는지 안 부러졌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장의 사진이 어떻게 굶주림의 체험 나아가서는 환희의 체험을 놓고 ‘철저한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사진이든 부정할 수 없는 한가지 차원은 갖고 있다. 모든 사진은 사실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해야할 것은 사진이 어떻게 사실들에 의미를 주고 주지 못하는가를 따져 보는 일이다.

사진의 발명초기에는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던 사진이 현대에 와서는 디지털의 기술개발 등으로 더욱 발달하여 일반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가 쉽게 접할 수 있게 됨으로서 사진은 사회활동을 위한 하나의 생활매체가 되었다. 기계적 개념으로서의 사진은 카메라를 이용하여 화상을 재현시키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진은 카메라에 의해 기록되며 카메라는 기계적 기록성 때문에 실재하는 대상의 존재양태를 사실적으로 기록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어떤 목적으로 대상을 촬영할 것인가를 사진가가 결정하고, 사진가가 프레이밍을 통해 카메라를 작동시키는 한 사진의 객관적 표현은 있을 수 없으면, 주관적 표현을 하게 된다. 게오르그 게페스(George Kepes)에 의하면 자연현상은 온도계와 속력계 또는 풍압계 등에 기록될 때 그래프 곡선이나 숫자라는 심볼(Symbol)로서 변용 된다고 한다.

그와 같이 카메라의 렌즈를 개방한 채 놓아두면, 심야의 별똥별은 한 가닥 선으로 표상 되고 사진은 유성이라는 운동의 시간변화를 공간화 할 뿐 아니라 선으로 패턴화해 버림으로써, 한 가닥의 선으로 추상화된 시간의 이미지는 우리의 시간에 대한 개념에 변화를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운동하는 것을 시간의 개념으로 환기할 수 있다면 한 가닥의 선은 어떤 시간개념을 의미하는 심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홍순태, 사진예술론 1970, 해뜸 PP31-32)

콩트(August Conte)의 실증주의는 과학과 연관속에 경험으로 예측할 수 있는 사실에 중요성을 두며 불합리하거나 확실치 않은 것은 배제하고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 합리성을 추구하게 된다. 사람들은 실증주의 철학 속에서 사진을 통해 실재성과 자연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실재성을 바탕으로 한 사진은 존재하고 가시적인 모든 것을 소재로 삼고 있는 실제로 포착된 경험이며, 그 경험에 참여한 듯한 느낌을 줌으로서 그 경험에 대한 중요한 체험수단의 하나가 되었다.
사진의 매체적 기능은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시각적 반영을 확대하고 오늘날 포토저널리즘을 탄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즉, 사진은 시각을 통한 차원의 언어, 현대의 새로운 매체로서 물리적 세계나 사회적 사건을 새롭게 이해시키기 위한 전달수단으로서 인간의 지식을 연결시키며, 다른 어떤 수단보다 유효하게 전파시킬 수 있었다.

사진의 객관성이 주는 증거력은 현실로부터 선택되고 고립된 피사체의 단편이 어느 순간에 기계적으로 재현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으며 진실의 여부는 사진 그 자체와는 관계없이 사진 밖의 요소, 즉 그것이 어떤 맥락(Context) 속에서 어떤 서술을 위해 선택되었느냐 하는 것에만 관계된다. 남주환1992. 신문사진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원 학위 논문

우리들의 지각계통은 사진을 관람하면서 그것이 한 장의 종이 위에 재현된 화상이 아닌 그 전의 대상, 즉 현실로 볼 것을 강요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진이 어느 다른 시각적 매체보다도 그 재현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사진 속의 현실이 실재의 현실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사진을 통한 현실의 인지는 사진을 강력한 진짜 거짓말을 할 수 있게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진은 현실을 전달하는 전체를 포함하지 못하며 특정한 단편만을 프레이밍하기 때문에 무엇을 의미하느냐, 어떤 장면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객관성 문제도 어려움에 당면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의 사실성과 정확성에 대한 신뢰감은 사진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현실의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는 사진의 복사-재현의 특성으로 인한 기록적 가치 위에 성립되며, 따라서 사진이 진실하다고 하는 절대적 신념도 더욱 확고해졌다.
사진의 기록은 기계와 기계를 조작하는 인간을 소외하려는 기계와 인간이 매개하기 때문에 비인간적 프로세스와 인간적 프로세스를 자체에 내포하고 있다. 하나의 사진이 생생하다고 했을 때, 그것은 엄청난 역설이다. '죽어버린 순간'으로서의 사진이 생생하다고 하는 것은 박제가 생생하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역설적인 것이다. 하나의 사진이 현실을 명쾌하게 보여준다고 했을 때도, 그것은 역시 하나의 역설이다. 명쾌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는 현실의 혼탁하고 착잡한 국면들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사진은 진실한가?
사진의 객관적 진실성이 의심받기 시작하면 사진이 역사의 자료가 된다는 믿음도 훼손 받게된다. 과연 사진에 보여지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과거를 기억시켜주고, 구성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에 나타나는 과거는 과거일 수 없을 것이다. 사진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대부분이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와 문화에 의해 선택되어진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진이 과거 그 자체를 보여주지 않는 구성된 이미지들이기 때문에 역사적 과거를 보여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도 사진과 마찬가지로 과거 그 자체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역사에도 과거의 사실들을 특정한 시각으로 묶어내는 내러티브의 구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진과 역사도 객관적 진실만을 보여줄 것이라도 믿음에서 출발하였지만, 둘 다 객관적 진실을 말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사진과 역사는 ‘사진의 기록(Document of Reality)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유지하고 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공중에게 보여주는 포토저널리즘의 경우에도 그것이 과거 역사적 사실의 확고부동한 증거가 된다라는 혼은 신념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포토저널리즘은 우리에게 특정한 사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에 있어 이념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롤랑바르트는 사회구성원들이 공유라는 믿음, 이념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Myth)'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바르트에게 신화란 이를 통해 한 문화가 현실이나 자연의 어떤 측면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Fiske. J. 1990. 강태완. 김선남 역(1997) 문화커뮤니케이션론 서울:한뜻 P155-156

물론 여기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실제 독자는 신문에 게재된 사진을 보면서 일차적으로 일어난 사진을 전달하는 사진의 직접성, 볼거리, 사실성에 현혹되어 그 배후에 존재하는 신화적 상징을 막연하게 인식하든지, 아니면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오히려 포토저널리즘의 장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감추어져 있을지라도 상징은 우리의 진단적인 무의식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상징의 힘도 약화되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징이 사실적인 이미지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포토저널리즘은 그를 이용하여 그 사회의 신화를 계속해져 전파 할 수 있다.

신화의 특성은 그 반복에 있다. 포토저널리즘도 마찬가지로 그 사회의 신화적 상징을 간파하는 포토저널리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포토저널리즘에서 보여주는 신화적 상징은 되풀이되어지면서 과거에 대한 기억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의 수용소 생활을 보여주는 홀로코스트 사진은 “나치의 잔혹함, 불쌍한 유태인‘이라는 시화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Zelizer 1999. From Image of Record to the Image of Memory : Holocaust photography, Then and New. In B.Brennen & H.Hardt. p123-157 Urbana and Chicag :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이러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포토저널리즘은 직접적인 사건의 기록으로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반복적으로 보여 지면서 과거를 특정한 방향으로 기억하게 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젤리저(Zelizer.1999. 위의책)는 홀로코스트(holocaust)사진들이 사실에 대한 기록의 이미지에서 기억의 이미지로 전화(轉化)되어 가는 과정을 사진이 찍혀진 장소, 대상의 정체성, 시간, 사진가 등에 대한 창조성(Referentiality)이 약화되고 상징성(Symbolism)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젤리저가 말하고 있는 포토저널리즘의 상징성이 획득되어지는 방법을 살펴보면 첫째, 상징성은 캡션(Caption)에 의해 얻어진다. 즉 사진에 대한 캡션을 불명확하고 모호하게 함으로써 보편성(Universality)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상징성은 사진기자 혹은 사진통신사 모두에 대한 정체성의 결여를 통해 획득되어 진다. 전쟁기간 동안에 사진을 찍은 사진 가들의 이름이 인쇄되는 경우는 없었고, 이처럼 구체적인 도구에 의해 찍혀졌더라고 하는 사실이 결여되어 있음으로 해서 상징성과 보편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셋째, 상징성은 사진 속에 묘사된 사진들이 제3제국 어디서나 그리고 제3국 통치기간 중에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제시될 때 획득되어진다는 것이다. 젤리저가 이야기하는 전시에는 Credit의 대부분이 통신을 통해 전달되면서 기자 이름보다는 소속회사명을 표시한 채 전송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The Great War Photographs : Constructing Myth oh History and Photojounalism, In B. Brennend H. Hadt. P123-157 Urbana and Chicago

그리핀은 그의 저서(Griffin. M(1999)) 뉴스사진은 사진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 전쟁에 대한 지속적인 이미지들은 전투현장에서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진실 되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문화적/국가적 신화의 상징으로서 그 자신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서 아주 심각하게 묘사된 포토저널리즘 속에 있는 사진의 특수성과 세부사항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죽음, 희생, 애국심 등과 같은 상징적 순간의 드라마틱한 요소, 감정적인 끌림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유명한 포토저널리즘 사진들은 폭력, 용기, 희생, 영웅주의, 비극 등이 친숙한 문학적 주제들과 연관이 있다. 이러한 사진들은 묘사(Description)보다는 신화의 수준에서 작용하는 상징과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포토저널리즘은 사진 리얼리즘과 시각적 증거(Visual evidence)의 영역과 축제(Ceremony)와 찬미(Glorification)의 영역사이의 경쟁의 장소이다. 뉴스사진은 이러한 경쟁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신화적인 영역을 표현하는 것이다. 뉴스사진은 국가적/신화적 내러티브를 상징화한다. 전쟁을 보여주는 인쇄된 사진들은 의례(Ritual)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것은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의 표시로서 구성된 기념물들, 전시물들과 유사한 것이다. 이렇게 사진은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것 자체가 역사적 사진을 해석하는 상징으로서 역할 하는 것이다.

사진은 진실을 말 할 수 없다.
사진은 사실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 사실이 모두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사진에는 카메라 메커니즘이 만드는 인간의 시각상의 차이에 의한 사진적 시각으로서의 거짓과 사진가가 만들어 내는 거짓이 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짓을 김형곤교수는 첫째, 미화의 거짓으로 무엇이든 사람의 손에 의해 미화되는 것을 말하며, 기능을 살리되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찍으려는 행위자체도 찍는 사람의 주관적 관점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거짓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선택의 거짓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의한 것으로 어떤 피사체를 고르느냐에 따라 대상이 전혀 다른 경험으로 바뀌기 떄문이다.
선택이란 주관적 관념과 의지의 표현으로 피사체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 통제행위이다. 결국 작가의 주관적 통제를 거치지 않은 사진이란 한 장도 없다.

사진이 ‘객관적 기록’이라고 하지만 객관적 사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찍혀진 사진은 어떤 의미에서든 사진가의 주관적 통제를 거친 선택된 소재와 접근방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이란 어느 편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그 사실 자체로 이미 객관적이고자 하는 주관적 선택행위인 것이다.

셋째, 정형화의 거짓은 사물의 이미지에 맞추어 그 전형을 좇음으로 일부만을 전체처럼 묘사하고자 하는 행위로 선입견을 가지고 거기에 자기 자신을 짜 맞춤으로써 기존 정보매체를 통해 형성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3. 사진의 의미
포토저널리즘의 진실성이란 사진을 보는 사람이 보여지는 사건의 이미지를 신뢰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 낼 수 있어야한다. 사진을 보면서 그 미를 파악하기 어렵고,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사진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실패한사진일 것이다.
이러한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포토저널리즘은 사진에 반드시 제목과 캡션이 첨부되는데 이들은 사진이 하나의 일관된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사진의 캡션을 롤랑 바르트는 “부유하는기의들”을‘한곳에 정박(anchorage)“시키는 역할을 한다. 발터 벤야민은 사진제목이 수용자들이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와 같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사진의 제목과 캡션은 사진의 시간, 장소를 하나로 정해주는 역할을 하며, 얼굴의 소유자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이처럼 포토저널리즘은 우리에게 사실 그 자체를 제시하며 우리에게 제공되는 기사의 진실성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사진은 현실세계를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 아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사진의 촬영, 현상, 인화 과정에서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된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많은 학자들은 사진 속에 나타난 이미지가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 다의적으로 해석되어 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된다. 롤랑 바르트는 이를 사진의 외연적 의미(denotation)와 함축적 의미(connot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사진 속에 나타난 이미지는 현실 속에 있는 대상을 지시하는 외연적 의미를 나타내지만 이것을 근거로 하여 함축적의미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말하는 외연적 의미는 기호의 상식적이고 명백한 의미를 말한다. 어떤 거리를 찍은 사진은 특정한 거리를 나타낸다. 또한 ‘거리’라는 단어는 길을 따라 건축물들이 죽 늘어선 도시의 거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같은 거리라 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일출 무렵에 연초점렌즈를 이용하여 따뜻하고 멋있는 거리를 표현할 수도 잇고, 초점과 콘트라스트를 강조하여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때 사진의 외연적 의미는 동일하지만 함축적 의미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바르트는 사진에서 함축적 의미와 외연적 의미는 분명한 차이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연적 의미는 카메라에 포착된 대상을 필름에 기계적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인 반면에 함축적 의미는 이 과정에서 사람의 의도적인 선택이 개입한 부분인 것이다. 프레임 내에 무엇을 담을지, 초점은 어떻게 할지, 노출은 얼마나 줄 것인가, 카메라 앵글은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질의 필름을 쓸것인지등의 과정이 인간적인 선택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연적 의미는 사진이 찍은 대상(what)이며, 함축적 의미는 사진을 찍는 방법(how)인 것이다.

포토저널리즘의 경우에는 그것이 ‘사실의 기록(document of reality)’이고, 제목과 캡션에 의해 명확한 하나의 의미가 읽혀지기 때문에 의미의 해석과정은 외연적 의미를 파악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명확한 듯 보이는 포토저널리즘에서도 함축적의미가 읽혀질 수 있다.
포토저널리즘은 우리에게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것은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이 어떤 사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어떤 믿음, 이념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바르트는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이념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myth)'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에게서의 신화란 이를 통해 한문화가 현실이나 자연의 어떤 측면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실제 독자들은 포토저널리즘사진을 보면서 일회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전달하는 사진의 직접성, 구경거리, 사실성에 현혹되어 그 배후에 존재하는 신화적 상징을 막연하게 의식하든지, 아니면 전혀 의식하지 못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오히려 포토저널리즘사진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비록 감추어져 있을지라도 상징은 독자의 시선과 의식에 직접적으로 노출이 되면, 그것이 반복되어 그만큼 상징의 힘도 약화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징이 사실적인 이미지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포토저널리즘은 이를 이용하여 그 사회의 신화를 줄기차게 전파할 수 있다. 박인철교수는 ‘신화의 특성은 반복에 있다. 포토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형곤교수는 이처럼 순수한 사실만을 전달 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포토저널리즘사진도 신화적 상징을 이용한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Ⅲ. 결론

포토저널리즘의 사진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에 포토저널리즘의 요소로 뉴스가치, 설명적 가치, 사진 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독자들은 사건의 상황을 TV나 다른 영상매체를 통해 더 정확히 알 수 있게되었고, 설명적인 사진에서는 어떠한 사진적 가치도 발견할 수 없어 외면당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설명적인 사진에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피쳐사진(feature)의 게재 율이 높아지고 있다. 뉴스사진에서도, 스포츠사진에서도 ‘피쳐화하기’(featurizing the news)가 일반화되어 정착해 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포토저널리즘의 기록성(현실성)과 창조적 재구성(표현성)의 논란은 오래된 일이다.
케네스 코브레는 보도의 뉴스성 보다는 독자의 감정을 사로잡는 ‘감정적 효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독자가 사진 속의 인물과 연관될 수 있는 ‘인간적 요소’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포토저널리즘의 표현성 강조는 포토저널리즘과 사진예술의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과거에는 사진의 보도적(현실의 객관적 반영)기능, 과 예술적(자기표현)기능이 엄격히 구분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한 뉴저널리즘의 영향으로 외국에서는 포토저널리즘이 현재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시각에 회의를 갖게됐다.

주관적 중재자, 사진가로 그 정체성을 옮겨가며, 예술과 보도를 융합하려는 새로운 포토저널리즘은 현대사진과 맞물려, 사회적이슈, 존재를 성찰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특히 포토저널리즘의 예술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미 일반 독자들의 영상이미지 수용능력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내의 포토저널리즘은 전통적 뉴스가치에 들어맞는 소재와 주제를 취급하며, 이를 관행화 된 코드와 관습에 의해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보다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고, 주변적 인물이나, 사건이나 상황의 뜻밖의 모습을 포착하여 새로운 시각의 다양한 측면을 강조하는 사진이 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사진의 진실성은 신화,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제도 속에서 사용되어진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모습을 그대로 촬영, 보도하는 것이 포토저널리즘의 자세라는 맹신에서 벗어나 사진이미지의 실제를 해석할 수 있는 지각된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사실에 대한 충실한 대체 기호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신화창출이다. 사진에 대한 연출, 조작, 디지털, 이데올로기, 문화적, 사회적 담론 속에서 더 이상 독자들에게 사진의 허구를 들어내서는 곤란할 것이다.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몫은 포토저널리스트들의 냉철하고 창의적인 사진가로서의 역할을 부여할 것이다.

포토저널리즘의 사진은 있는 모습 그대로 복사해야 하기 때문에 포토저널리스트의 관점(view point)은 중요치 않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사진적 가치'(picture value)를 인정받고 있는 외국의 현실이 국내에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Ⅳ. 참고문헌
김형곤(2003) “사진과 리얼리즘”<최근 언론학 연구의 동향> 한국언론학회 PP1-7
주형일(2001) “부르디외와 사진 : 사진행위에 대한 부르디외의 분석이 갖는 의의와 한계”<한국언론정보학보>17호 PP.145-178
Arago.D. F(1839) 이홍관 역 “Dominique Francois Arago의 보고서”<계간사진비평> 7권 PP155-162
Becker. K(1991) "To Control Our Image : Photojournalists and New Technology", Media, Culture and Society Vol.13 PP381-397
Benjamin. W 반성완 편역(1983) “기술복제시대의예술” ,민음사 PP197-231
Bourdieu P.(1965)
Un Art Moyen : Essai Sur les Usages Sociaux de la Photographic. 한경애 역(1989)<사진의 사회적 정의> 서울 : 눈빛
Freud. G 2001성완경 역<사진과 사회> 서울 : 눈빛
Kracauer. S "Photography", Theory of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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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00) “디지털 시대의 포토저널리즘” PP17-20 삼성언론재단
Lister, M The Photographic Image in Digital Culture 우선아 역(2000) , 시각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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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학과장

***  이 글은 2006년 한국사진기자협회 제 3회 한국보도사진 워크숍에서 발표한 오승환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학과장의 글입니다.  경향신문사 사진부에 근무하던 포토진과 중앙일보 사진부에 근무하던 오승환교수는 88년에 신문사에 입사했던 동기로 홍익대 대학원은 오교수가 먼저 입학했었고 졸업은 포토진이 조금 빨랐었지요.  위의 글을 읽다가 포토진이 쓴 졸업논문에서 한 줄 인용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네요. 2002년 아시안게임 때 부산에서 만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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